한나라의 군현 방어 시스템 '목책 장성'

 한나라의 군현 방어 시스템 '목책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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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MKL3eGh3dg?si=Ntz1fm8ekry1Hr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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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군사요새와 전략 분석


특히 수많은 군현(郡縣)과 군현을 방어하는 맥락에서 군사 요새에 대한 한(漢) 왕조의 접근 방식은 방어 건축과 전략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보여준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나의 주州라는 거대한 행정 구역이 있으면

그 행정 구역은 여러 군(郡)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군(郡)은 수십 개의 현(縣)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한 군(郡)에는 그 군(郡)의 수도가 되는 현(縣)이 있고 그 현(縣)의 토성(土城) 안에는

태수가 집무하는 총독부와 주요 관아와 군영(軍營)이 있다.


이런 토성 안에는 민가나 기와집같은 사적인 백성의 건물들은 둘 수 없다. 


토성을 엄청나게 넓게 지으면 돈이 많이 들고 지나치게 쓸데없이 큰 것이므로 황제국이나 제후국 급의 수도가 아닌 이상 


지방의 군현들의 토성들은 방어에 용이하고 관청,관아,군영들을 보호할 만큼 


적당하게 지으면 된다.  ( 잠깐 설명 : 지방의 군현들의 토성들이 너무 지나치게 크면 그건 독립을 꾀하는 것일수도 있고 반역이나 다름없다.


이씨조선은 아랫것이 윗사람한테 개기지못하게하라는 성리학(性理學)의 가르침에 따라 백성이 사또를 고소하지못하게했다.


이는 백성들이 사또의 탐관오리질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지방 세력들의 거대화를 억제하게되는 거기도했다. 조선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다 노렸다.


그래서 임진왜란 직전 조선시대의 평지의 성들은 그리 크지 않았고 존나 작은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


결국 토성의 주위로 수많은 민가,기와집들이 깔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 이웃한 현(縣)들도 각자 토성이 있고 토성 안에 현령(縣令) 이 집무하는 관청과 군영이 있고 


그 토성 주위로 역시나 민가들,기와집들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縣)과 현(縣)을 도로가 이어준다. 당시 한나라는 벽돌을 깔아서 도로를 만드는 동양의 선진 문명이었다.


 그런데 만약 흉노,오환,선비,고구려같은 흉악한 야만족들이 "키키키~":거리며 쳐들어오면 

토성만 믿고 방어할 수는 없다.


민가들,기와집들이 활활 불타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밭들이 불타게된다. 그럴수는 없다. 한나라는 대제국이기 때문에 야만족 따위의 침입이 있다고해서 고구려마냥 논밭 불태우고 제 살 제 뼈를 

깎는 병신같은 전술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고로 현(縣)의 토성과 이웃한 현(縣)의 토성들을 도미노처럼 쭈루루룩 연결하는 목책이 필요하다. 그 목책이 곧 장성(長城)이 되는 것이고


그 장성은 국경 장벽인 동시에 최대의 방어 요새가 된다.

목책들 쭈루룩 깔았다고 그게 어떻게 방어 요새가 되냐하는건 등신이나 할 생각이다.


목책 앞에 해자를 파고 해자 안에 죽창,스파이크들을 존나 박아넣고, 해자 앞에 마름쇠들 촥 촥 촥  뿌리고 

궁수와 보병 그리고 쇠뇌를 포함한 군대의 전략적 배치가 언제든지 가능하게 상시 출동 가능하게 시스템을 촤라락 깔았다.


근데 한나라는 엄청나게 넓은 대제국이고 군현들도 많고 주州가 무려 9개나 되고 1 주(州)가 무지하게 크다.


인구수는 5000만~1억이나 된다. 근데 사방이 야만족이고 사방이 다 적이다. 


그럼 결국 군현들 하나 하나를 연결하는 장성(長城)이 필요한 것이고 결국 그 장성은 군현의 토성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목책 아니면 돌로 된 성벽인 것이고


목책같은 경우에는 해자도 일일히 설치해줘야한다.

그러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흉노,오환,선비,고구려의 끊임없는 약탈 도적질은 한나라로 하여금 개빡치게했다.

그래서 부여랑 동맹해서 고구려를 조져버리고 


흉노,오환,선비를 이간질 시키고 , 암살하고 혹은 관모 관복 악기 도장 관직같은걸 하사하며 우쭈쭈하며 어르고 달래다가 확 그냥하며 협박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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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어의 복잡성은 흉노(흉노), 선비(선비), 고구려(고구려)와 같은 다양한 유목 부족과 주변 국가의 끊임없는 위협에 대한 대응을 반영한다. 

끊임없는 침략과 침략에 직면한 한(漢) 왕조는 복잡한 요새 시스템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스템은 방어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외부 위협에 노출되기 쉬운 지역을 통제하고 안정시키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더욱이 고구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부여(부여)와 같은 세력과 동맹을 맺는 등 한 왕조의 전략적 동맹과 외교적 책략은 그들의 군사 전략의 다각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속임수, 암살, 외교적 유인의 사용은 한족의 군사 및 정치 전략의 복잡성을 더욱 강조한다.


요약하면, 군현들을 강화하려는 한(漢) 왕조의 접근 방식은 포괄적이고 

다면적인 전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물리적 구조와 군사 배치뿐만 아니라 

동맹, 외교, 심리전을 포괄하는 더 광범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광대한 행정 구역과 상당한 인구로 유명한

 고대 중국의 가장 중요한 왕조 중 하나의 안정성과 완전성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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