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3의 게시물 표시

만리장성은 함경남도 함흥에까지 이어졌다.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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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장성은 함경남도 함흥에까지 이어졌다.Fact ===테마 음악============ https://youtu.be/YIP8ymZiWhU?si=G1QYCoMtKutKPZUz ====================== 북직례총요도는 대략 하북성 난하 산해관 근처까지의 만리장성이고.  대명여지도의 장성은 산해관에서 다시 시작하는 목책 형태의 또 다른 장성이다. 고금화이구역총요도는  옛날부터 지금에 걸친 중화와 야만족의 구역의 총체적 요약도란 뜻이다. 이 지도에 그려진 만리장성은  함경남도 옥저에까지 이어진 한漢나라의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만리에 걸친 국경 장벽이란 뜻이니 진시황이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 등 여러 나라들의 장성들을 하나로 잇는 대공사를 한 것이고 한漢 세종世宗 효무孝武황제 폐하께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 현토군,낙랑군을 설치하셔서 그 국경장벽이 함경남도의 함흥의 옥저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북직례총요도. 방향을 휘릭 돌려서 봐라 대명여지도의 만리장성. (산해관~요동반도) (고금화이구역총요도 옛날부터 지금에 걸친 중화와 야만족의 구역의 총체적 요약도에 그려진 함경남도 옥저에까지 이어진 한漢나라의 만리장성)

한나라의 군현 방어 시스템 '목책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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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의 군현 방어 시스템 '목책 장성' ====테마========================= https://youtu.be/EMKL3eGh3dg?si=Ntz1fm8ekry1Hrp8 =============================== 한나라의 군사요새와 전략 분석 특히 수많은 군현(郡縣)과 군현을 방어하는 맥락에서 군사 요새에 대한 한(漢) 왕조의 접근 방식은 방어 건축과 전략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보여준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나의 주州라는 거대한 행정 구역이 있으면 그 행정 구역은 여러 군(郡)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군(郡)은 수십 개의 현(縣)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한 군(郡)에는 그 군(郡)의 수도가 되는 현(縣)이 있고 그 현(縣)의 토성(土城) 안에는 태수가 집무하는 총독부와 주요 관아와 군영(軍營)이 있다. 이런 토성 안에는 민가나 기와집같은 사적인 백성의 건물들은 둘 수 없다.  토성을 엄청나게 넓게 지으면 돈이 많이 들고 지나치게 쓸데없이 큰 것이므로 황제국이나 제후국 급의 수도가 아닌 이상  지방의 군현들의 토성들은 방어에 용이하고 관청,관아,군영들을 보호할 만큼  적당하게 지으면 된다.  ( 잠깐 설명 : 지방의 군현들의 토성들이 너무 지나치게 크면 그건 독립을 꾀하는 것일수도 있고 반역이나 다름없다. 이씨조선은 아랫것이 윗사람한테 개기지못하게하라는 성리학(性理學)의 가르침에 따라 백성이 사또를 고소하지못하게했다. 이는 백성들이 사또의 탐관오리질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지방 세력들의 거대화를 억제하게되는 거기도했다. 조선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다 노렸다. 그래서 임진왜란 직전 조선시대의 평지의 성들은 그리 크지 않았고 존나 작은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 결국 토성의 주위로 수많은 민가,기와집들이 깔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 이웃한 현(縣)들도 각자 토성이 있고 토성 안에 현령(縣令) 이 집무하는 관청과 군영이 있고  그 토성 주위로 역시나 민가들,기와집들이 깔려있는 것이...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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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갈석)이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Q0-lbXz33ns?si=PtEHQJzhnNuNUnt_ https://youtu.be/0YeuLebksC8?si=sRwyQbVrmuGllEEC ============================= (내가 ai로 그린 광개토)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 (내가 ai로 그린 낙랑군 수성현이 있던 관미성)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태왕 편의 관미성(關彌城) 부분 //삼국사기 > 고구려본기 제6 > 광개토왕(廣開土王) > 백제의 관미성을 빼앗다 백제의 관미성을 빼앗다 ( 392년 10월(음) ) 원문 冬十月, 攻䧟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環繞, 王分軍七道, 攻撃二十日, 乃拔. 〔즉위년(392)〕 겨울 10월에 백제의 관미성(關彌城)註 001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이며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다. 왕이 군대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빼앗았다.註 002 註 001 관미성(關彌城) : 광개토왕이 공취한 백제 성곽인데, 「광개토왕릉비」 영락6년(396)조에는 각미성(閣彌城)으로 나온다(이병도, 379쪽; 武田幸男, 171쪽). 이 기사에서 보듯이 “4면이 가파른 절벽이며 해수(海水)로 둘러싸인” 전략적 요충지로 지형상 해안이나 섬에 위치하였다고 추정된다. 이에 종래 예성강 하구(酒井改藏, 51쪽; 박시형, 174-176쪽; 손영종, 1986, 26쪽; 이도학, 1990: 2006, 361-362쪽; 서영일, 52-53쪽), 개풍 백마산고성(손영종, 1990, 297쪽; 문안식, 178쪽), 강화도의 교동도(이병도, 379쪽; 공석구, 213쪽)나 하음산성(윤명철, 174쪽), 임진강~한강 하구의 오두산...

사마천 사기에 만리장성은 요동에까지 이어져서 조선과 연결되었다고 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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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에 만리장성은 요동에까지 이어져서 조선과 연결되었다고 적고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记=史記)'에 만리장성(萬里 長城)은 요동(遼東)에까지 이어져서 조선과 연결되었다고 적고있다. 만리장성은 당시 중국의 국경 장벽이다. 한나라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 낙랑군(樂浪郡)을 설치했으니 자연히 국경 장벽은 더 길어진 것이다. 장성이라고 해서 꼭 돌로 된 성벽만이 장성이 아니다. 산(山)의 석성(石城)과 평지의 토성(土城)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목책(木冊)까지 다 포함해서 장성長城인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廣開土)가 휩쑬은 백제(百濟)의 58개의 성(城)들과 백제의 의자왕(義慈王)과 ,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서로 휩쑬은 각자의 성(城) 40개들이 설마 다 돌로 된 성(城)이겠는가?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는 사마중달(司馬 仲達)의 손자인 '태강 무제 사마염(太康 武帝 司馬炎)'의 진(晉)나라 때의 지리를 적은 기록이다. 고로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라 하면 중국 사마씨 진(晉)나라의 국경 장벽이 북한의 평안도, 황해도에까지 연결되어있었다는 것이고 고로 낙랑군 수성현은 마땅히 북한에서 찾아야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 송(宋) 나라 때 지도 '지장도(=指掌圖=역대지리지장도歷代地理指掌圖)'(삼국유사에도 언급되는 지도이다.)를 보면 만리장성이 옥저(沃沮)에까지 연결되어있다. 옥저는 함경남도 함흥이다. 즉 함경남도 함흥에까지 중국의 목책(木冊)들이 쭈루룩 이어져있었다는 것. 목책은 다 불타고 사라졌을테니 장성(長城)의 흔적을 찾기는 힘든 것이다. 다만 목책들은 여러 성(城)들을 연결해주는 것이란걸 항상 명심해야하는 것이다." //영어 번역  "Sima Qian's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states that the Great Wall extended to Liaodong, connecting wi...